그분의 질주

위튼과 말다세나는 17살 차이가 난다. 지금의 말다세나는 91년의 위튼보다 더 많은 업적을 이미 보여준 것일까? 위튼의 전성기는 90년대 초중반을 넘어 2000년대가 되어서까지 이어졌는데, 68년 9월생으로 아직 만40세가 되지 않은 말다세나의 40대는 어떤 놀라운 결과를 보여줄 것인가?

아카이브에서 말다세나의 이름을 넣고 검색하면 지난 1년간의 논문이 7편이 나온다. 페이지수로 보면 33, 49, 27, 73, 41, 48, 48. 물론 분량이 문제가 아니고, 논문들에서 보여주는 "시대를 앞서는 아이디어, 기술적 탁월함, 현란한 수학 없이 새로운 결과를 설명하는 천재성"등이 놀랍다.

어제 아침에 버코비츠와 말다세나가 내놓은 논문은, 그동안 대부분의 끈이론 학자에게도 "아무래도 못알아들을 것만 같은 먼 나라 이야기"였던 버코비츠의 도구상자가 드디어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알아먹을 수 있는" 설명들을 제공하기 시작한 느낌을 받게 한다.

상당부분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이 같은 날 나왔는데, 주석에 의하면 "바이저트, 리치, 체이틀린, 볼프" 팀이 먼저 일을 했지만 버코비츠와 말다세나가 논문을 끝낼때까지 참을성있게 기다려 주었다고 한다. 이 팀은 바이저트를 제외하면 런던 임페리얼 대학의 멤버. 요즘 ABJM의 붐을 보면 체이틀린이 왜 조용할까가 의문이었는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증이 풀렸다.

내가 끈이론 학계에서 만난 이탈리아 남자들은 대체로 세가지 타입 중 하나이다. 첫번째, 여자에게 들이대기 좋아하는 느끼한 작업남 타입 (남녀 불문하고 일단 인간관계 원만). 둘째, 카톨릭 수사같은, 금욕적인 분위기의 노력파 학자타입 (겸손). 셋째, 자신의 세계에 강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 타입 (성격 더럽게 생겼다). 그런데 이 분류는 대체로 연구원 시절에만 적용되며 교수가 되면 모두 한가지 새로운 인간형으로 수렴하는 것 같다.

리카르도 리치는 이름에서 보이듯이 이탈리아 출신으로 현재 임페리얼 대학의 포스닥인데, 지난 겨울 방문중에 만났다. 셋째 타입으로, 지금은 이탈리아의 밀라노에 있는 로렌조 코르날바와 비슷한 인상이다. 스파이어스에 의하면 지금까지 논문이 14편이지만 50+도 하나 없었는데 드디어 큰 일을 하나 해낸 것인지.

버코비츠+말다세나 논문의 주제는 간단하게 "Fermionic T-duality"라는 말로 요약된다. 끈이론의 T-대칭성은 아주 잘 알려져있는데 10차원 배경중 한 방향을 원으로 만들었을 때 아주 큰 원과 아주 작은 원에서 끈이론의 물리학이 사실은 동일하다는 것으로 표현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낮은 에너지에서의 초중력 이론을 고려했을 때 한 이론의 정확한 해가 주어졌다면 그 아이소메트리 방향을 하나 택하여 T-대응을 고려하면 다른 이론에서의 또 하나의 정확한 해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메트릭 텐서는 NS필드와 교환되며 RR필드는 IIA와 IIB사이에서 대응성을 취한 방향만큼의 다리가 하나씩 더 생기거나 줄어들거나 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배경이 주어진다.

이 성질을 보통은 초끈이론에서 많이 고려하지만 당연히 원래는 모든 등각장론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다. 예를 들어서 비선형 시그마 모델을 생각할 때 그것이 가지는 불변성이 있다면 당연히 T-대응성을 취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고 그 결과로 얻는 새로운 비선형 시그마 모델의 메트릭이 바로 T-대응되는 메트릭이다.

좀더 기술적으로는 worldsheet에서 게이지 장과 auxiliary를 하나 새로 도입하는데, 어떤 쪽을 먼저 적분해버리는가에 따라 원래 이론을 얻기도 하고 T-dual 이론을 얻기도 한다. 이 테크닉은 1988년에 나온 Buscher의 논문을 인용하고 있는데, 포인트는 같은 테크닉을 페르미온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 물론, 페르미온이지만 worldsheet에서는 보존처럼 2차의 미분이 걸리는 그린-슈워츠 정식화를 써야 한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초대칭이 있는 배경에 대해서 페르미온 T-대응성을 취하면 항상 새로운 초대칭 배경을 얻는다. NS장은 불변이며, 딜라톤과 RR장들의 값이 바뀐다. 두 이론은 고전적으로 동일하지만, 양자역학적 수준에서는 다르다.

두가지의 중요한 예를 들어서 페르미온 T-대칭성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첫번째로 하이브리드 포말리즘에서의 4차원 N=1 끈이론이다. 물론 이것은 버코비츠에게는 회심의 아이디어. 여기에서의 페르미온 T-대칭성에 의하면 graviphoton장이 상수인 경우와 모든 장이 0인 민코브스키 배경이 연결된다. 이것이 비가환공간에서의 장론에 대한 사이버그-위튼의 연구라든지, 혹은 좀 더 최근의 다이그라프-바파의 N=1 게이지 장론의 정확한 유효 초포텐셜 계산이라든지 신기하게만 보였던 대응성을 깨끗하게 설명해줄것 같은 느낌이 든다.

두번째의 예는 버코비츠의 테크닉을 통해서 양자화해주기를 기다리는 가장 중요한 문제: AdS5*S5이다.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T-대응되는 배경은 자기자신이다. 그런데 사실은 원래 AdS에 대응되는 장론에서의 기본적인 산란진폭이 대응이론에서는 일종의 윌슨 고리가 된다. 즉, 4차원 게이지 장론의 섭동-비섭동 대응성을 고전적인 끈이론만을 통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이 논문의 가장 놀라운 함의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 얼마나 다양한 RR배경에 대해서 같은 테크닉을 써서 대응 게이지 장론에 대한 새로운 직관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by 루이 | 2008/07/23 21:01 | Hauptvermutung | 트랙백

Last meal in Hamburg



뭐 특별하게 축하할 일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자 상인들의 도시, 함부르크에 열흘 정도나 있는데 제대로 된 음식점에 가보지 않는다는 것은 실례일 것으로 생각되어, 마지막 날 시간을 쪼개어 시내로 나갔다.

시내라고는 하지만, 도심이 아니라 서쪽의 중심정도되는, 알토나(Altona)라는 곳이다. 현대화되기 전에는 물론 함부르크 성 밖에 있었던 마을이지만 지금 함부르크 전체 지도에서 보면 뭐 도심에서 아주 가깝다. 중앙역에서 S반으로 10분정도 걸리려나.

시간이 많지 않을것 같아 인터넷에서 알토나역 근처의 괜찮은 식당을 찾아보았다. 구글신의 도움으로 찾은 곳은 Kleine Brunnenstrasse 에 있으며 주소 자체를 레스토랑 이름으로 사용하는 작은 식당. 메뉴가 인터넷에 올라와있는데, 점심으로 예를 들면 볼로냐소스의 푸실리, 샹타렐(독일어로는 피퍼링게라고 한다) 소스의 탈리아텔, 다른 것들은 내가 주문한 고등어구이, 또는 소시지 등 몇가지 없다는 것이 마음에 들어서 결정했다.

"고등어"는 한국에서도 너무 흔한 생선이라 좀 꺼려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한 것은 곁들임의 샐러드가 너무나 그럴듯했기 때문이다. "구운 펜넬, 오렌지와 바질 샐러드를 곁들임"

펜넬은 구근류의 야채로 독특한 향이 있는데 적어도 이탈리안 샐러드라고 하면 펜넬이 꼭 들어가면 좋겠다는 게 나의 취향(또는 집착)이다. 집착하는 또다른 야채로 프렌치에 가끔 쓰이는 아티초크가 있는데 뭐 그건 나중에.

주문을 하고 기다리니까 빵을 가져다 주는데 이게 결론부터 말하면 "엑설런트"였다. 이탈리아에 가거나 또는 직접 빵을 굽는 이탈리안 식당에 가면 "치아바타"풍의 빵을 잘라서 올리브오일과 함께 주는데 이게 또 프랑스나, 독일 스타일과 다르다. 프랑스나 독일보다 빵껍질이 가볍고 덜 바삭거리며, 속은 프랑스의 바게트와 독일의 호밀빵의 중간정도의 밀도를 가지는 텍스쳐로, 손으로 반죽해서 빵을 만들었을 때의, 속이 좀 뭉친듯한 기분이 나면서 칼로 자르면 흡사 백설기떡을 칼로 자를때 약간 밀려 작은 덩어리가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난다. 그러면서도 빵의 탄력은 살아있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반죽할 때 올리브 오일을 넣기 때문에 약간의 기름기가 느껴져야 한다는 것. 샌드위치용으로 적당한 것은 속에 구멍이 많이 뚫리고 텍스쳐가 가벼운데, 그냥 올리브오일만 찍어서 먹을때는 텍스쳐가 무거운 쪽이 더 좋다. 몇년만에, 제대로 된 이탈리아 빵을 덕분에 먹었다. 나중에 계산하면서 물어보니 정말 빵을 직접 굽는다고.

고등어는 후추를 많이 뿌려서 그릴에 구운 것인데, 간이 많이 되어서 고등어 자반 생각이 났다. 그래도 은근히 아직 육즙은 꽤 있더라. 그리고 약속대로 펜넬을 얇게 저며서 팬에 구웠는데 향이 좀 미미했던 편. 그릴에서 강한 불에 확 굽는편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긴 하더만, 어쨌든 양은 반뿌리는 쓰는 듯, 펜넬은 양껏 먹었다.

by 루이 | 2008/07/17 18:17 | Tagebuch | 트랙백 | 덧글(5)

빵에 얽힌 추억

1.
런던에 있을 적에, 매주는 아니지만 가끔 토요일에 연구실에 나가곤 했다. 물론 토요일에 나가면 거의 99% 나 혼자이고, 학교 식당도 다 문을 닫는다. 아침에 나가면서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동네 빵집에서 뭘 좀 사야하는데 문제는 "샌드위치"라는 말을 만든 나라이기는 하지만 영국의 샌드위치는 뭘 넣는지 거의 먹으면 바로 명치에서 걸린다는 것 - 지금은 영국에도 신의 은총이 내려 "Pret a Manger"가 성업중이지만, 그때는 아직 문명화되기 전, 야만의 시대였다. 그래서 집어드는 것이 보통 도너츠나, 아니면 스콘. 그 동네 빵집은 유리 진열대가 3미터 정도,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 두 개 정도가 되고 곱게 늙은 은발의 할머니 한 분이 계산을 맡아보셨다. 지금도 살아계실지. 그때는 "블루머"라고 부르는 시골풍의 큼직한 식빵 - 보통 loaf라고 부르는 직육면체 모양이 아닌, 달걀을 반으로 자른듯한 모양의 빵 - 을 벽에 걸린 진열대에 올려놓았다가 40펜스에 팔곤 했다. 오피스에 나가서 있다가 시간이 좀 지나 스콘을 먹다 보면 목이 메이곤 한다 - 서러워서가 아니고, 진짜 스콘을 먹어본 사람은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이다. 스콘이 원래 차에 곁들여 먹는 것이라서. 어쨌든 그때 그, '설타나'가 들어갔던 소박한 스콘의 맛이 잊기 어렵다.

2.
지금 DESY의 그룹을 맡고 있는 쇼메루스가 함부르크로 오기 전에 있었던 곳이 프랑스의 사클레이다. 프랑스의 국립연구소 중 하나이고 특이한 점은 "국방부" 소속이기 때문에 보안이 철저하다는 점. 교수라도 주말에는 아예 연구소 출입이 안 될 정도이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사실이며, 연구소장 정도되면 출입이 되지만 연구소장이라도 다른 사람을 - 예를 들어서 연구소의 평교수(!) -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역시 금지. 2003년, 그때도 이번처럼 초청을 받아 세미나 일정을 잡고 방문을 했는데, 사클레이란 곳은 파리에서 우리의 국철에 해당하는 RER을 타고 한참 가야하는 곳. 내리면, 아주 한적한 시골 마을이 나타난다. 가끔 식당에 가기도 했지만 근처에서 주말에 서는 시장(!)에서 염소젖 치즈와 복숭아(이게 또 프랑스가 자랑하는 아이템 중 하나이다)를 사고, 동네 빵집에서 바게트를 사서 먹었다. 아, 파리는 그 전에도 여러번, 후에도 한 번 더 갔지만 그게 가장 맛있었던 바게트였다. 아마 꿈에서나 다시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극상의 텍스쳐. 이런 훌륭한 솜씨를 가진 베이커가 왜 이 시골에 있어야 할까?

3.
베를린의 겨울은 아주 춥다.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날이 매년 열흘은 넘는 정도. 독일의 겨울밤은 콘서트장에서, 여름밤은 비어가텐에서 보내는 것이 정석이다. 콘서트가 있는 날이면 꼭 나타나는 "라우겐빵"을 큼지막한 바구니에 넣어 파는 사람들. 지난 겨울에는 혹시 예약이 될까 해서 휴일 낮에 콘서트장에 갔는데, 저녁공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기 때문에 건물이 열려있기는 했지만 박스 오피스도 문을 닫았고 거의 사람이 없이 조용했다. 그런데 그 밖 추운곳에서 라우겐 빵 바구니를 들고 서있던 키 큰 젊은이가 있었다. 추위도 안 타는지 거의 미동도 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인형인줄 알 정도로. 독일이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사회적으로 비교적 안정되어있는 편인데, 평일저녁, 8시면 거의 모든 집에 전등이 꺼지는 것을 보면 답답하기도 하다. 겉으로 보면 한국만큼의 치열한 경쟁이 없어보이는데, 그만큼 '기회'가 없다는 말일수도 있고. 그날 빵바구니를 들고 서있던 젊은이는 어떤집에 살고, 어느학교를 나왔고, 어느직장을 가지고 있었을까?

by 루이 | 2008/07/16 02:10 | 비망록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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