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ic Colonialism? 비망록

아는 사람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APCTP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Job Opening"이 났다.

아시아 태평양 이론 물리 센터(APCTP)는 1990년대에 노벨상 수상자인 C.N. Yang을 초대 소장으로 해서 아시아, 환태평양 지역의 이론물리 연구의 중심이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출발했다. 그동안 Focus, Topical program 등 많은 학술활동을 지원했고 결과적으로 한국 학계의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던 것은 이 센터를 통해서 새로 생긴 교수자리, 즉 permanent position 이 없었다는 것.

카이스트의 총장까지 겸임했던 2대 소장인 러플린 교수에 이어 이번에는 독일 출신의 새 소장을 맞이한 것도 시간이 상당히 흘렀다. 새 소장이 제시한 새로운 프로그램이 "Independent Junior Research Group"이라는 것이다. 일단 분야는 고체이론으로 하나, 끈이론으로 하나가 났다. 5년짜리 지원 프로그램인데, 앞으로 더 자리가 생기는 것인지 이번에 선정해서 그것으로 5년동안 계속 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클 듯. 테뉴어트랙인 것은 물론 아니지만 어쨌든 진일보했으니,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중량급 인사가 오게 되면 포항공대의 교수들과 시너지 효과가 생길 수도 있고.

요점은, 가능성이 보이는 젊은 연구자에게 연구그룹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매년 지원금은 2억원. 이것은 교수 자신의 연봉을 제외한 금액이며, Junior Leader에 대한 대우는 "상당히 경쟁력 있는 조교수급"이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기준은 포항공대의 교수 연봉으로 하려나? 그렇다면 국내 기준으로 상당히 좋은 편이긴 할 텐데. 물론 이론물리 분야일 것이니까 2억원의 상당 부분은 인건비로 사용될 수 있으며 포닥 2인에 학생 2인 정도를 지원하고도 여비는 물론, 컴퓨터 등 기본적인 연구기자재를 갖추는 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연구실은 현재 포항공대에 있는 APCTP에 있게될 테고 데스크탑이야 원래 있을 거니까 노트북 정도만 사면 될테니. 다른 포항공대 교수들처럼 교수아파트에 살 수 있다면 그것도 상당한 Side benefit.

그런데 이게, 상당히 독일적인 제도이다. 영국도 정부에서 아직 교수가 되지 않은 이에게 지원하는 5년짜리 연구 프로그램이 있긴 하다. 바로 Advanced fellowship 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경우는 자기 연봉에다가 여비와 컴퓨터 등을 살 수 있을 뿐, 다른 연구원을 뽑을 수 있는 자금 지원은 전혀 없다. 독일은 유명한 Heisenberg program이라는 게 있어서 5년동안 자기 연봉을 지원받을 수 있고 여비 등의 기본적인 연구비도 포함된다. 이것보다 한 단계 높은 것이 Emmy Noether program. 이번에 한국에다가 이식하려고 하는 프로그램의 원조가 바로 이것인데, 보통 5년동안 지원하고 역시 포닥을 뽑거나 학생지원을 할 수 있는 연구비가 패키지로 지원된다. 이상은 독일 과학재단 (DFG)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인데, 경쟁관계라고 할 수 있는 MPG (막스 플랑크 학회)에서도 최근 더 좋은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끈이론 관련해서 이 지원을 받는 대표적인 경우가 니클라스 바이저트. 지금 알버트 아인슈타인 연구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그룹 멤버는 바이저트 본인과 포닥 2인, 박사과정 2인, 그리고 디플로마 과정 1인으로 되어 있다. 인건비 뿐 아니라 얼핏 듣기로는 "연구비 써야 하기 때문에 내년에 국제 학회를 하나 해야할 것 같애"라고 할 만큼 상당히 여유있게 지원을 하는 듯.

중요한 이슈는 "Junior Leader"라고 할 때 과연 얼마나 어린 후보자를 염두에 두었느냐 하는 것이다. 니클라스 바이저트가 학부과정(디플로마,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보통 7년이상 걸리기 때문에 우리로 치면 석사학위에 더 가깝다)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시작한 것이 2002년. 박사학위를 받고 프린스턴 대학에 연구원으로 간 게 2004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조교수로 승진한 게 2005년.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받으며 독일로 다시 돌아온 것이 2006년이다. 바이저트는 극단적으로 "잘나가는"케이스니까 좀 더 현실적인 예를 생각해 보자. 지금 뮌헨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 있는 요한나 에드멩거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것이 1997년 여름. 훔볼트 대학에서 에미 뇌터 프로그램을 시작했던 것이 2001년 여름이다. (물론 지금은 끝났다.) 역시 뮌헨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현재 에미 뇌터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마르코 자거만. 미국의 펜 스테이트에서 학위를 받은 것이 SPIRES에 의하면 2000년. 프로그램 시작은 2005년. 바이저트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학위를 받은 후 4-6년 사이에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 아닐까 싶다. 좀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독일에서는 졸업후 5년 정도 후에 하이젠버그 프로그램이나 에미 뇌터 프로그램을 받지 못하면 물리를 그만두라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도 있을 듯하다. 역시 극단적인 예지만 보리스 쾨스라는 친구가 있었다. 베를린의 훔볼트 대학에서 2001년 학위를 받았고 그 후 주로 끈이론의 현상론적 모델 빌딩에 대한 연구를 주로 했는데 상당히 많은 인용을 받았다. 지금까지의 논문을 검색하면 98년 부터 06년까지 40편의 논문이 등록되어 전체 인용횟수가 무려 2285번에 달한다. 물론 보리스 쾨스는 세계적인 대학과 연구소에서 일하며 비교적 큰 그룹으로 일한 경우가 많아 그 개인이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가는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어쨌든 굉장하다. 그런데 MIT, CERN등을 거치며 논문을 펑펑 써내던 이 친구가 2006년에 독일로 돌아오려고 5년짜리 연구비 지원을 했다가 실패하자 그냥 깨끗하게 학계를 떠나 컨설팅 업체로 이직하고 말았다.

다시 APCTP 소식으로 돌아가서, 이왕에 돈을 쓰기로 (듣기로는 상당한 부분의 자금은 독일에서 새 소장이 따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정한 것이니 두루두루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소장이 고체이론이니까, 그리고 그의 강력한 의지와 활동에 의해서 가능해진 프로그램이니까 고체이론 분야가 하나 들어간 것은 당연하지만 나머지 한 분야가 명시적으로 "끈이론"으로 결정된 것은, 뭐랄까, 내가 끈이론을 하지만 좀 어떤가 싶다. 어차피 "예외적인 후보자"를 보자는 것인데 입자 현상론이나 중력 등도 넣었으면 어땠을까.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젊은 학자가 과연 한국에 와서 뿌리를 내린다는 결정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역시 한국인 학자가 선정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물론, 심사과정에 한국인으로 구성된 coordinator들이 많이 관여하기도 할 것이다!) 학위취득 후 4-6년 정도를 타겟으로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