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는 도봉산 산행에 다녀와 지친 다리오를 이끌고 홍대앞에 갔다. 다리오 마르텔리. 이탈리아 리보르노 출신. 피사에서 학부. 박사학위는 트리에스테의 SISSA에서 2000년. 이후 첫 번째 포닥은 나와 마찬가지로 런던의 퀸 메리. 한 번 임페리얼로 옮기며 런던에서 2004년까지. 다음에는 CERN으로 옮겨 2006년까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쪽 업계에서는 그저 'The Institute'라고 부르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첫 논문이 나왔던 것은 1998년 8월인데, 십년이 지난 지금, 2008년 9월 29일까지의 논문은 38편으로, 눈에 확 띄는 다작은 아니지만 총 인용횟수가 1940회. 백번 넘게 인용된 논문이 6편. 오십번 넘은 것이 9편.
다리오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마침 QMW에서 계약이 일년 연장되어, 마음이 안정되어 있는 편이었다. 의미있는 토론, 내지는 공동연구다운 공동연구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저 일년이 지나가도 어떻게든 잘 되겠지 하던 때. 다리오는 특히 그때 같이 시작했던 독일 베를린 출신의 안드레와 비교해서 붙임성있는 성격이 돋보였다. 옆자리에는 안드레가 앉게 되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제롬과 시작했던 일의 확장에는 다리오가 합류하게 되었다. 나는 그 프로젝트가 일단락지어지는 시점에서 떠났지만, 야심찬 일반화는 결국 사사키-아인슈타인 공간의 새로운 예의 발견으로 이어졌고 제롬, 제임스, 다리오 정도가 대박의 큰 혜택을 보게 되기에 이르렀다. 논문당 평균 인용횟수가 50이 넘다니, 십년 전에 다리오가 지금 이렇게까지 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클럽 데이라는 마지막 주 금요일이지만, 갑자기 추워져서 그랬는지 어쩐지 내게는 홍대앞 거리가 좀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지하철 역에서 빠져나오는 데 인파로 혼잡해서 한참 걸리기는 했다.) 북 페스티벌이라는 걸 해서 길 가운데에 주욱 천막이 쳐져, 길 반대쪽을 볼 수 없는 것도 이유였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 분야로 한정하면 유럽의 어지간한 나라들 중에 가장 "새로운 학문적 성취"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탈리아다. 제대로 된 경우, 영국이라면 데이빗 통, 프랑스라면 보리스 피올린, 독일은 니클라스 바이저트 정도, 화끈하게 실력을 보여주면 "좋은 자리"가 주어진다. 물론, 그 업적이 세계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은 경우들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이탈리아에서 90년대 말, 끈이론의 2차 혁명 이후 학위를 받은 친구들은 많았다. 퍼머넌트 포지션을 받은 게 베르톨리니, 보넬리, 달아가타 정도인데 물론 통, 피올린, 바이저트와는 급이 다르지만 그래도 자질에 비해서는 이웃나라 동료들에 비해 고생이 좀 심하다는 느낌. 뭐, 결정적인 것은 인용수가 이천 중반인 자파로니, 비앙키 선생 등이 아직 부교수라는 것이고, 그 때문에 다리오 정도도 영국의 'Lecturer'자리보다 격이 떨어지는 'Ricercatore'자리도 될까 말까 확실치 않은 난감한 상황.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보이는 다리오지만, 일단은 스원지에서 Lecturer 자리를 얻었으니 제2의 고향으로 삼는다 생각하고 정붙이고 살 작정이란다.
다리오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마침 QMW에서 계약이 일년 연장되어, 마음이 안정되어 있는 편이었다. 의미있는 토론, 내지는 공동연구다운 공동연구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저 일년이 지나가도 어떻게든 잘 되겠지 하던 때. 다리오는 특히 그때 같이 시작했던 독일 베를린 출신의 안드레와 비교해서 붙임성있는 성격이 돋보였다. 옆자리에는 안드레가 앉게 되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제롬과 시작했던 일의 확장에는 다리오가 합류하게 되었다. 나는 그 프로젝트가 일단락지어지는 시점에서 떠났지만, 야심찬 일반화는 결국 사사키-아인슈타인 공간의 새로운 예의 발견으로 이어졌고 제롬, 제임스, 다리오 정도가 대박의 큰 혜택을 보게 되기에 이르렀다. 논문당 평균 인용횟수가 50이 넘다니, 십년 전에 다리오가 지금 이렇게까지 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클럽 데이라는 마지막 주 금요일이지만, 갑자기 추워져서 그랬는지 어쩐지 내게는 홍대앞 거리가 좀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지하철 역에서 빠져나오는 데 인파로 혼잡해서 한참 걸리기는 했다.) 북 페스티벌이라는 걸 해서 길 가운데에 주욱 천막이 쳐져, 길 반대쪽을 볼 수 없는 것도 이유였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 분야로 한정하면 유럽의 어지간한 나라들 중에 가장 "새로운 학문적 성취"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탈리아다. 제대로 된 경우, 영국이라면 데이빗 통, 프랑스라면 보리스 피올린, 독일은 니클라스 바이저트 정도, 화끈하게 실력을 보여주면 "좋은 자리"가 주어진다. 물론, 그 업적이 세계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은 경우들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이탈리아에서 90년대 말, 끈이론의 2차 혁명 이후 학위를 받은 친구들은 많았다. 퍼머넌트 포지션을 받은 게 베르톨리니, 보넬리, 달아가타 정도인데 물론 통, 피올린, 바이저트와는 급이 다르지만 그래도 자질에 비해서는 이웃나라 동료들에 비해 고생이 좀 심하다는 느낌. 뭐, 결정적인 것은 인용수가 이천 중반인 자파로니, 비앙키 선생 등이 아직 부교수라는 것이고, 그 때문에 다리오 정도도 영국의 'Lecturer'자리보다 격이 떨어지는 'Ricercatore'자리도 될까 말까 확실치 않은 난감한 상황.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보이는 다리오지만, 일단은 스원지에서 Lecturer 자리를 얻었으니 제2의 고향으로 삼는다 생각하고 정붙이고 살 작정이란다.
태그 : 물리학자

